목양칼럼 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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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총 181개의 글이 있습니다.
  • 151
    사계절을 지나 완성되는 사랑
    사계절을 지나 완성되는 사랑 작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애순과 관식의 사계절 같은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된 사랑이 끝까지 이어진다는 설정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이야기이기에 더 깊은 울림을 주는지도 모릅니다.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가 하나 있습니다. 사랑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헌신이 필요하고, 서로를 향한 신뢰가 필요하며, 시간 속에서 선택하고 지켜 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이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성경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 이야기가 곧 성경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의 모습은 드라마처럼 아름답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은 ‘관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우리의 사랑은 ‘애순’의 사랑에도 미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쉽게 흔들리고, 때로는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며, 신랑 되신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불완전하고, 우리의 믿음은 연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고 흠 없고 거룩한 신부로 세우신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더러운 것을 씻어 주시고 온전하고 아름다운 신부로 만들어 가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그 사랑 이야기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신랑 되신 주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며 신부로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사계절을 지나 완성되는 사랑처럼, 우리의 신앙도 때로는 겨울 같고, 때로는 봄처럼 설레며, 여름처럼 뜨겁고, 가을처럼 깊어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랑의 이야기를 끝까지 아름답게 완성하신다는 사실입니다.그 사랑을 믿고, 그 신랑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6년 4월 12일박일룡 목사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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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
    부활의 그 날은 반드시 옵니다
    부활의 그 날은 반드시 옵니다. 목회를 하면서 수많은 장례 예배를 집례해 왔습니다. 병상에 누워 계신 성도님들을 심방하고, 양로병원에 계신 어르신들을 찾아가 기도드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오래전에 보았던 드라마 모래시계의 한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듯 보였던 조직폭력배의 행동대장이 사형 집행의 순간, 떨리는 목소리로 친구에게 묻습니다. “나, 떨고 있니?” 죽음만큼 사람을 깊이 아프게 하는 것도, 죽음만큼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담대한 사람이라도 죽음 앞에서는 흔들립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단지 생명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약속으로 주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죽음이 지배하는 현실 속에 있습니다. 지난주 장례 일정으로 Rose Hills Memorial Park를 다시 방문했습니다. Sky Chapel 아래에 있는 작은 연못 위, 오래전에 마련해 두었던 저희 부부의 묘지 자리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아직은 멀게 느껴지지만, 언젠가는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날 저도 그곳에 조용히 묻히게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 시선을 돌리니, 또 다른 언덕에서는 새로운 묘지를 만드는 공사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미 넓은 묘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로운 자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불황이 없는 사업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장례사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보편적인 죽음의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 소망은 바로 부활의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기 때문에, 그분과 연합된 우리도 또한 살아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로마서 8:11) 이 세상 곳곳에서 전쟁은 계속되고, 경기는 불안하며, 우리의 육체는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현실 속에서도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주는 것이 바로 부활의 소망입니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부활의 그 날이 올 것입니다. 이 부활 신앙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견고한 닻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6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에박일룡 목사 
    202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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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9
    고난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도 믿음입니다
    고난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도 믿음입니다 목회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날이 갈수록 더 깊이 실감하게 됩니다. 특히 불치의 병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성도들, 그리고 삶의 깊은 어려움을 지나고 있는 성도들을 만날 때마다 제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온누리교회의 고 하용조 목사님은 일곱 차례의 간암 수술과 매주 네 번의 신장 투석이라는 고통 속에서도 사역을 감당하시다가 65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고통을 당할 때 세 가지를 기억하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첫째, 상황을 받아들이라.둘째, 인내하라.셋째, 감사하라. 엘리자베스 쿠블러-로스 박사는 사람이 죽음에 직면할 때 보이는 다섯 단계의 반응을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충격과 부정(shock and denial), 둘째는 분노(anger), 셋째는 흥정(bargaining), 넷째는 우울(depression), 마지막은 받아들임(acceptance)입니다. 이 과정에서도 마지막 단계가 받아들임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아마도 가장 힘든 것이 “받아 들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받아들임”은 체념이 아닙니다. 포기하거나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앙의 가장 깊은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주권적인 사랑으로 베풀어 주신 것처럼, 지금의 고통 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고통은 우리를 연단합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게 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지를 보게 합니다. 고통은 사람을 가장 겸손하게 만들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우리는 고난의 모든 이유를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다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그러나 분명히 믿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우리의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고난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심을 믿고, 그의 선하신 뜻에 우리 자신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에 우리 자신을 드릴 때 우리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우리가 그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도 얻게 될 것입니다. 2026년 3월 29일박일룡 목사
    202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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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8
    우물 안 개구리의 진정성을 넘어야 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의 진정성을 넘어야 합니다 “정저지와(井底之蛙)”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입니다. 우물 속에 사는 개구리는 하늘을 본다고 해도 우물 입구만큼만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이 그만큼이라고 생각합니다. 식견이 좁아 넓은 세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요즘 우리는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말합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진정성’이라는 말로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진정성이 객관적인 진리를 붙들지 못하면 그것은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음이 되고, 신념이 아니라 편협한 이기주의가 되기 쉽습니다. 아무리 진심이라도 그 방향이 잘못되어 있다면 결국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더 넓은 시각을 가르쳐 줍니다. 인간의 이념이나 좌우의 틀을 넘어서 하나님 안에서 인간을 보게 합니다. 성경은 인간 안에 있는 죄성과 악함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이 여전히 남아 있어 인간 안에 선함의 흔적도 있음을 보여 줍니다. 모든 인간의 제도와 생각에는 죄성과 선함이 동시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쪽이 절대 선이고, 다른 사람은 절대 악인 경우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때 우리는 비로소 균형 잡힌 눈을 갖게 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가 원하는 것을 붙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는 결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자기 주장과 욕심을 붙잡고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작은 우물 속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내 것을 주장하는 삶이 아니라 붙잡는 삶이 아니라 내어 주는 삶, 자기 중심의 길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길을 따르기 시작할 때 우리의 시야는 넓어지기 시작합니다. 나를 붙드는 삶이 아니라 나를 내어 주는 삶을 배울 때 우리는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참된 자유와 생명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026년 3월 22일박일룡 목사
    202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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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
    과거의 유리벽을 깨고 앞으로 나아가라
    과거의 유리벽을 깨고 앞으로 나아가라심리학에서 종종 소개되는 이야기 가운데 “파이크 증후군(Pike Syndrom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장애물이 사라졌는데도 과거의 경험 때문에 스스로 가능성을 포기하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파이크(pike)는 육식성 물고기인데, 실험에서 큰 수조에 파이크와 작은 물고기들을 함께 넣고 그 사이에 투명한 유리벽을 설치했습니다. 파이크는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먹으려고 계속 돌진했지만 매번 유리벽에 부딪혔습니다. 여러 번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하게 됩니다. 그 후 연구자는 유리벽을 제거했습니다. 이제 아무 방해도 없이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먹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파이크는 더 이상 작은 물고기들에게 돌진하지 않았습니다. 눈앞에 먹이가 있었지만, 그대로 굶어 죽어갑니다. 과거의 실패 경험 때문에 “어차피 안 될 것”이라고 스스로 믿어 버린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모습이 종종 나타납니다. 과거에 실패했던 경험, 실수했던 기억, 사람들에게 받았던 상처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안 될 거야.” “나는 이미 실패한 사람이야.”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없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과거가 마지막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와 실수보다 훨씬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넘어졌던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다시 일어날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의 실패로 우리를 정의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의 문을 여십니다. 때로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실제 장벽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유리벽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안 된다”는 생각, “이미 늦었다”는 체념이 우리를 붙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상황이 달라집니다.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과거의 실수 때문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이제 그 보이지 않는 유리벽에서 벗어나야 합니다.우리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과거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주님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십니다. 2026년 3월 15일박일룡 목사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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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6
    마음이 무너질 때 붙들어야 할 것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마음이 무너질 때 붙들어야 할 것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열심히 노력했던 일이 기대와 다르게 흘러갈 때,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예상과 다른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때 찾아오는 허탈함과 낙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구약의 열왕기상 19장에 나오는 엘리야도 그랬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바로 세우고자 애썼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숨어 있다가 갈멜산에서 놀라운 이적과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위협은 여전했고, 상황은 나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광야 로뎀나무 아래에 주저앉아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사실 낙심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잘 찾아오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기대했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리에 엘리야를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어 물과 떡을 먹이시고, 그를 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시고, 새로운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난 속에서 비슷한 고백을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에서 그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이는 들어가고, 몸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상황은 쉽게 좋아질 기미가 없어 보입니다. 어쩌면 이 고난이 끝까지 이어질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바울이 붙들었던 믿음은, 하나님이 반드시 이 땅의 모든 고난에서 우리를 쉬게 하시고,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영광으로 인도하신다는 확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지 다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반드시 일하신다는 것은 믿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이 무너질 때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약합니다. 나는 다 할 수 없습니다.”그리고 고백 위에서 우리는 또 다른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3:5). 마음이 무너질 때, 붙들어야 할 것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그분이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2026년 3월 8일박일룡 목사
    202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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