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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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167개의 글이 있습니다.
  • 143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양쪽 귀가 벌겋게 데인 채 병원 응급실로 들어왔습니다. 의사가 물었습니다.“아니, 귀를 어떻게 이렇게 화상을 입으셨습니까?”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다림질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깜빡하고 다리미를 전화기인 줄 알고 받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쪽 귀는 왜 또 화상을 입으셨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다시 전화를 했지 뭡니까.” 오래전 인터넷에서 보았던 유머입니다. 웃고 지나갈 이야기 같지만, 자주 정신을 놓고 사는 저에게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아마 저만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기억력이 좋던 아내도 나이가 들면서 가끔 깜박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도 제가 예전에 잘못했던 일들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도, 정신이 없어도 반드시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늘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그리고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은 점점 하나님의 진리를 마음에 두기를 싫어합니다. 자기 뜻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려 합니다. 세상은 늘 그래왔지만, 때로 성도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자신을 드리기보다 하나님이 내 뜻을 이루어 주시고 내가 가는 길을 도와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기 쉽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우리는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이심을 인정하고,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걸어가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예배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마음을 다해야 하고, 찬송을 부를 때도 마음을 다해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가 얼마나 전문적이고 완성도 높게 드려졌는가를 먼저 보시기보다,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십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향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를 더욱 기쁘게 받아 주십니다. 내가 선하다고 여기는 방식, 내가 기뻐하는 방식대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그 뜻대로 예배하고 찬양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2026년 2월 15일박일룡 목사
    202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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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2
    불순물 때문에 더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도 있습니다
    불순물 때문에 더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광물 가운데 하나는 다이아몬드입니다. 같은 다이아몬드라 해도 그 가치는 모두 같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순도, 무게(캐럿), 그리고 색상이라는 기준으로 평가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불순물이 거의 없고 투명한 화이트 다이아몬드가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순도가 높을수록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예외가 있습니다. 핑크 다이아몬드와 블루 다이아몬드는 불순물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이트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더 비싼 값을 지닙니다. 핑크 다이아몬드는 결정 구조의 미세한 변화로 색을 띠고, 블루 다이아몬드는 붕소 성분이 포함되어 독특한 색을 냅니다. 이 불순물들은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보다, 오히려 전체에 고르게 스며들어 더 희귀하고 아름다운 빛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이 다이아몬드들은 수십 배의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다이아몬드의 생성 과정 역시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다이아몬드는 같은 탄소로 이루어졌지만, 오랜 시간 극심한 고온과 고압을 견뎌낼 때에만 단단한 결정체로 형성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없었다면 탄소는 여전히 흑연으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은 존재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고난과 역경은 때로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인격을 연단하여 더 깊은 신앙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고난이 항상 ‘정제’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상처는 쉽게 제거되지 않고, 오히려 마음 깊은 곳에 흉터로 남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상처 때문에 스스로를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상처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불순물이 전혀 없는 완벽함에 있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상처와 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덮고도 남는 은혜에 있습니다. 핑크 다이아몬드가 불순물 때문에 빛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더 특별한 아름다움을 지니듯이, 우리의 상처 역시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됩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빛나게 하는 것은 고난을 통해 연단된 고매한 인격 그 자체가 아니라, 상처 입은 우리 안에 스며든 그리스도의 보혈과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의 삶 전체에 퍼질 때,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아름다운 빛을 내는 존재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자기 자신을 얼마나 잘 다듬었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품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 은혜를 의지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흠과 상처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그 자리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다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값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2026년 2월 8일박일룡 목사
    2026.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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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1
    눈처럼 덮을 것인가, 비처럼 씻을 것인가
    눈처럼 덮을 것인가, 비처럼 씻을 것인가 지난 주 전 세계 곳곳에서 기록적인 눈폭풍 소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눈으로 고생하는 소식도 듣지만 눈을 보지 못하는 남가주 주민으로는 여기도 눈이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눈이 내리면 세상은 순식간에 새하얗게 변합니다. 지저분하던 길도, 낡은 지붕도 모두 덮여 마치 정결해진 것처럼 보입니다. 설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현실이 드러납니다. 치워야 할 눈은 산더미처럼 남고, 녹아 내린 눈은 길을 더 질척이게 만들며, 감추어졌던 쓰레기와 더러움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비는 다릅니다. 비 오는 날은 불편합니다. 외출하기도 어렵고, 옷은 젖고, 풍경은 눈처럼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비가 그치고 나면 도로와 공기, 나무와 건물까지 씻겨 내려간 듯 맑아집니다. 비는 덮지 않고 씻어냅니다. 보이지 않게 가리는 대신, 더러움을 흘려 보내는 방식으로 세상을 새롭게 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종종 마음속의 부끄러움과 상처, 죄책감을 무언가로 덮으려 합니다. 성취, 명성, 바쁜 일상, 심지어 신앙적 언어로 까지 스스로를 포장합니다. 그 순간에는 깨끗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덮개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이전보다 더 지친 모습으로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더러움을 덮어두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드러내라고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자신을 숨기지 않고 나아갈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눈이 아니라 비처럼 우리를 씻기십니다. 감추어진 것을 드러낼 때 치유가 시작되고, 인정할 때 정결함이 주어집니다. 사람 앞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할 상처와 눈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지성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앞에 마음을 토해낼 때, 그분은 정죄하지 않으시고 씻기시며 새 힘을 부어 주십니다. 눈처럼 덮어서 잠시 깨끗해 보이는 삶이 아니라, 비처럼 씻김 받아 참된 정결함을 누리는 삶이 더 복된 삶일 것입니다. 다양한 지역의 눈폭풍 뉴스를 접하면서 자신에게 질문해 봅니다.나는 눈처럼 덮을 것인가 아니면 비처럼 씻을 것인가? 2026년 2월 1일박일룡 목사
    202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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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0
    고슴도치 딜레마를 넘어 사랑의 공동체로
    고슴도치 딜레마를 넘어 사랑의 공동체로 프로이드는 쇼펜하우어의 『부록과 추가』에서 인용한 이야기로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를 소개합니다. 추운 겨울, 몇 마리의 고슴도치가 서로의 온기를 나누기 위해 가까이 모입니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의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게 되고, 결국 다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추위는 그들을 다시 모이게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상처는 반복됩니다. 그렇게 모였다 흩어지기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 고슴도치들은 서로를 찌르지 않을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한 채 겨울을 견뎌 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인간관계, 특히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주 경험하는 현실을 잘 비추어 줍니다. 우리 모두는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 상처는 때로는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을 찌르는 가시가 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다른 이의 가시에 찔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이 두려워지고,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받지 않을 만큼의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를 맺으려 애씁니다. 두려움이 많고 상처받기 쉬운 우리가 가시를 가진 사람을 품는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주님처럼 사랑하고 섬기라는 말씀을 알고 있음에도, 실제 삶에서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내가 상처를 받으면 나 역시 가시를 세워 다른 사람을 찌르고, 다시 상처받을까 두려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버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그런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세운 가시를 피하지 않으시고, 그 가시를 온몸으로 담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찌르고 상처 입힌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는 사랑이 아니라, 찔림을 감수하면서도 품어 주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닮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우리의 굳어진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상처로 인해 날카로워진 가시도 조금씩 무디어지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이의 가시까지도 품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얻게 됩니다. 고슴도치 딜레마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은 결국 십자가의 은혜를 다시 붙드는 것 밖에 없습니다. 예배는 바로 그 십자가의 은혜 안에서 우리가 치유되고 회복되는 시간입니다. 상처 입은 우리가 다시 사랑할 힘을 얻는 자리, 그곳이 바로 예배의 자리입니다. 2026년 1월 25일박일룡 목사
    202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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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9
    안개 같은 인생, 예배자로 걷는 하루
    안개 같은 인생, 예배자로 걷는 하루 지난주 아내와 뜻밖의 논쟁을 했습니다. 주제는 다소 엉뚱하게도 “누가 먼저 천국에 갈 것인가”였습니다. 서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작된 이야기였지만, 대화는 점점 진지해졌습니다. 아내는 자신이 원래 몸이 약하고 지금도 가끔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기 때문에 오래 살 자신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하늘나라에 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반론을 제시했습니다. 장인어른은 사고로 일찍 돌아가셨지만, 처할머니는 백 세가 넘도록 맑은 정신으로 사셨고, 장모님도 여전히 건강하시니 아내는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것입니다. “골골해도 오래 살 것”이라고 말했더니 아내는 고개를 저으며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저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부모님은 대체로 건강하시지만, 아버님이 암 수술을 두 번이나 하셨기에 저는 언제든 암으로 갑자기 떠날 수 있다고요. 이 논쟁의 결론이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로뎀장로교회를 섬긴 지도 어느덧 12년이 가까워집니다. 처음 교회를 세울 때 함께 예배하던 분들 가운데, 이미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연로하여 자연스럽게 부르심을 받은 분들도 계시지만,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떠나신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우리 손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저는 해마다 목회 현장에서 뼈저리게 경험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내일도, 다음 해도 당연히 내 것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마치 내 생명이 내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말하고 계획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으며, 오직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일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장담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대로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가장 분명한 뜻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루하루를 하나님 앞에서 살며,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주님의 뜻을 구하며 예배자로 걸어가는 인생이야말로, 가장 복되고 가장 행복한 인생일 것입니다. 2026년 1월 18일박일룡 목사  
    202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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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8
    예배 안에서 예수님의 향기로 채워지게 되기를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향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체취를 넘어, 그 사람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드러내는 삶의 흔적입니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환경 속에 머무느냐에 따라 몸에 냄새가 배이듯이, 우리의 영혼 또한 무엇으로 채워지느냐에 따라 고유한 향기를 내게 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억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이나 행동을 꾸민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향기가 되지는 않습니다. 향기는 가까이 있을 때 저절로 배어나는 것이며, 오래 머물수록 더욱 깊어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삶은 예수님과 얼마나 가까이, 얼마나 자주 동행하느냐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가장 깊이 경험하는 자리는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단순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열리고, 말씀이 우리를 새롭게 하며, 은혜가 다시 우리를 채웁니다. 그때 우리는 세상의 냄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를 입게 됩니다. 그러나 예배의 자리에 자주 나온다고 해서 자동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서의 권면처럼, 우리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히 10:22). 형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습관이 아니라 갈망으로 드리는 예배 속에서 우리의 삶은 조금씩 변화됩니다. 2026년 한 해, 예배의 삶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의 향기가 더욱 깊이 배어 나기를 소망합니다. 그 향기가 가정과 일터, 그리고 세상 가운데 조용히 퍼져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1월 14일박일룡 목사
    2026.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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