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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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총 181개의 글이 있습니다.
  • 163
    억울한 것이 있을 때 주께 고하십시오
    억울한 것이 있을 때 주께 고하십시오 요즘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승리한 선수들과 패배하여 탈락한 선수들의 다양한 감정 표현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인 것 같습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라운드에 주저앉는 선수, 기쁨에 겨워 유니폼을 벗고 환호하는 선수, 땅을 치며 원통해 하는 선수, 얼굴을 유니폼으로 가린 채 통곡하는 선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기쁨을 표현하면 그 기쁨이 더욱 커질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함께 그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반대로 억울함과 슬픔을 마음속에만 담아 두면 병이 될 수 있습니다. 속상할 때 눈물을 흘리면 다양한 호르몬이 분비되어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긴장이 풀리며,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눈물뿐 아니라 우리는 억울함과 분노를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마음 속에만 담아 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화병이 되거나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풀어내는 방법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감정을 쏟아내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의 분노가 더 커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분노를 자극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어져 물건을 부수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파괴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억울함을 표현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다윗은 성경에서 가장 많은 억울함을 경험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인격이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를 사람에게 쏟아내기 보다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 하소연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윗의 시편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자신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아뢰는 '탄원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억울함을 솔직하게 아뢸 때 하나님께서는 위로를 베풀어 주십니다. 사람에게만 매달리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과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될 때, 내가 직접 복수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잃어버렸던 기쁨도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억울한 고난을 친히 당하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을 가장 깊이 이해하시고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벧전 2:23).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을 때 사람에게 쏟아놓기 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주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솔직하게 풀어놓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시고 다시 기쁨과 평안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2026년 7월 5일박일룡 목사 
    202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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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2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하라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하라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가운데 하나는 단연 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입니다. 타지마할은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건축물은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가장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을 위해 세운 무덤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 충격으로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렸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아름답게 끝나지 않습니다. 무리한 건축 사업으로 국고가 크게 약화되었고, 결국 샤 자한은 아들 아우랑제브에게 왕위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는 야무나 강 건너편의 아그라 성에 유폐된 채 여생을 보내야 했습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그는 매일 밤 강 건너편에 달빛을 받아 빛나는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타지마할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이 바로 아그라 성에서 달빛 아래 바라볼 때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 속에서 그 아름다운 건축물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해야 했던 황제의 모습은, 사별의 아픔이 얼마나 깊고 큰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자주 인용됩니다. 죽음은 이처럼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만큼 큰 고통도 드뭅니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살아갑니다.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다른 소식을 전해 줍니다. 히브리서 2장 15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시기 위해”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도 반드시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선포합니다. 지금은 죽음이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날에는 오히려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의 두려움에 매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을 소유한 사람답게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다. 장차 완성될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026년 6월 28일박일룡 목사
    202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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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1
    파인애플 이야기와 섬김의 비밀
    파인애플 이야기와 섬김의 비밀 네덜란드령 뉴기니에서 사역하던 한 선교사님이 신선한 과일을 얻기 위해 파인애플을 심었습니다. 원주민들에게 품삯을 주고 묘목을 심게 한 후, 3년 동안 정성껏 가꾸어 마침내 수확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파인애플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파인애플을 심었던 원주민들이 가져간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님은 화가 나서 따졌지만,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심은 것이니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교사님은 품삯을 주었으니 열매는 자신의 것이라고 여러 번 설명했지만, 개인 소유 개념이 희박했던 그들에게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선교사님은 밭을 원주민들에게 넘겨주고 다른 곳에 다시 파인애플을 심었습니다. 이번에는 더 많은 품삯을 주고 열매는 자신의 것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3년 후 같은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분노와 좌절이 쌓여 갔고, 선교사님은 원주민들과의 관계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깊은 낙심 가운데 있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만지셨습니다. "어차피 내가 붙들고 있어도 얻지 못하는 것이라면, 이 파인애플을 하나님께 드리자." 선교사님은 파인애플 농장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후에도 원주민들이 파인애플을 가져갔지만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묻는 원주민들에게 선교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이 파인애플은 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원주민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사람의 것은 가져갈 수 있어도 하나님의 것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는 더 이상 파인애플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파인애플이 모두 익자 원주민들이 찾아와 말했습니다. "파인애플이 다 익었는데 그냥 두면 썩어 버립니다." 그러자 선교사님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것이니 우리 함께 수확해서 먹읍시다." 그날 원주민들과 선교사님은 함께 파인애플을 나누어 먹으며 잃어버렸던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섬김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기준과 상식이 옳다고 생각하며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문화와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상식이 반드시 정답은 아닐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사랑과 섬김은 상대방을 바꾸려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 마음을 하나님께 내려놓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혹시 오늘도 누군가 때문에 마음이 상해 있거나, 자신의 수고를 인정받지 못해 낙심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 드려 보십시오. 내가 가진 것이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섬김의 기쁨과 사랑의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026년 6월 21일박일룡 목사
    202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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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0
    섬김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섬김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우리는 종종 평생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수고한 목회자들의 은퇴 모습을 보며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물론 평생 자신의 삶을 드려 섬긴 목회자들에게는 합당한 보상과 격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필요한 수준을 넘어서는 보상에 대한 요구가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섬김에 대한 보상이 지나치게 강조될 때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목회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교사들도, 일반 성도들도 같은 유혹을 경험합니다.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했는데 기대했던 만큼 인정받지 못할 때 섭섭함을 느끼고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그리스도를 위해 섬긴다고 말하지만, 때로 우리의 섬김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목적을 향해 나아갑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는 이유가 물질적인 보상이나 사람들의 인정,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섬김은 어느새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성공과 만족을 위한 수단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길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빌 2:5-11). 예수님의 삶에서 섬김은 더 큰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의 봉사와 헌신은 정말 하나님과 이웃을 향하고 있는가?아니면 결국 나의 유익과 편의, 인정과 만족을 위한 것인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섬김의 대가를 계산하는 삶이 아닙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섬김 자체를 기쁨으로 여기는 삶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막 10:45). 오늘도 내가 내려놓아야 할 권리와 편안함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섬겨야 할 자리는 어디인지를 깊이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 묵상 속에서 우리 모두가 조금 더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2026년 6월 14일박일룡 목사
    202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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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9
    최후 승리를 주는 힘은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최후 승리를 주는 힘은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아직도 여전히 여러가지 전쟁의 소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 정세를 보면서 한 나라의 국방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강력한 무기와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했다고 해서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국민들의 저항 의지와 정신력이 군사력을 뛰어넘는 힘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군인들 역시 전투에서 중요한 것은 무기만이 아니라 사기(士氣)라고 말합니다. 또한 싸워서 이기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싸우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외교력 역시 국가의 중요한 경쟁력입니다. 오늘날 경제와 기술의 영역도 비슷합니다. 한동안은 소프트웨어가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여겨졌지만, AI 시대로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GPU, 그리고 막대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국가와 기업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어 상대를 이기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힘과 영향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큰 힘과 더 강한 경쟁력을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다양한 힘의 경쟁시대에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붙들어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세상이 추구하는 지혜와 권력이 아니라 “십자가의 능력”을 붙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능력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자신을 내어주고, 희생하고, 섬기는 것이 어떻게 경쟁력이 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은 인간의 논리와 설득력으로 세상을 정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선포하고 믿음으로 붙드는 가운데 역사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눈에는 때로 무모하고 초라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약하다고 여기는 것을 통해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이 미련하다고 여기는 것을 통해 참된 지혜를 드러내십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궁극적인 힘은 무력이나 권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 그리고 섬김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힘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이 자랑하는 힘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더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초라하고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나타나는 십자가를 굳게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의 삶과 가정, 교회와 세상 가운데 드러날 때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최후 승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026년 6월 7일박일룡 목사
    202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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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8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으면 절경이 됩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으면 절경이 됩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저희 부부는 이번 휴가 기간에도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수백만 년의 세월 동안 풍화와 침식이 빚어낸 깎아지른 절벽과 거대한 바위들, 그 사이를 덮은 알파인 초원의 푸르름, 그리고 맑고 깊은 하늘빛은 가는 곳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했습니다.이번 여행에서는 자연뿐 아니라 오랜 역사와 예술을 품은 도시들과 건축물들도 함께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웅장한 성당과 궁전, 섬세한 조각과 화려한 건축미는 인간의 뛰어난 재능과 창조성을 보여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눈에 들어온 것은 곳곳의 균열과 낡아감이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건축물이라도 세월 앞에서는 상처를 입고, 끊임없는 보수와 복원이 필요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자연은 오랜 세월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아름다움을 드러내는데, 인간이 만든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낡고 쇠하여 결국 폐허가 되어 간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맡긴 사람은 인생의 풍파와 고난 속에서도 점점 더 아름다워집니다. 깎이고 다듬어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 시간을 지나며 믿음과 인격, 성품이 깊어집니다. 요셉의 삶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배신과 억울함, 감옥의 시간을 지나면서도 그는 무너지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의 작품으로 빚어졌습니다. 반면 자신의 힘만으로 버티며 살아가려는 인생은 시간이 흐를수록 지치고 메말라 가기 쉽습니다. 겉은 견고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 마음은 무너지고 삶은 초라해 질 때가 많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크고 작은 풍파가 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견디기 힘든 시간, 마음을 흔드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맡길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결코 헛되게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때로는 깎으시고, 때로는 다듬으시며, 결국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빚어 가실 것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깊은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인생,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만큼 아름다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2026년 5월 31일박일룡 목사  
    202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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