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1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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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118개의 글이 있습니다.
  • 22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얼마전 뇌과학자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보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본 것이 사물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뇌가 이미 경험한 것만 인지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녀가 서로 에로틱하게 안고 있는 그림을 보여 주었는데 아이들은 그 그림을 보면서 돌고래를 본다고 합니다. 자기들이 익숙하게 경험하여 알고 있는 것이 먼저 보인다는 것입니다.    아무 물체도 없이 도형만 있는 것 같은 그림 안에 감추어진 물체가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눈의 초점을 그림 뒤에 두어야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냥 일반 그림을 보듯이 표면에 집중하면 아무리 보아도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모양을 볼 수 없습니다.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보는 것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네모난 상자와 같은 육면체의 물건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육면체의 상자는 어떻게 들고 있더라도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세 면 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른 세 면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육면체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 뒷면은 보지 못했으면서도 말입니다.  우리가 보았다, 들었다, 경험했다고 하는 것도 그 사람에 대한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본 것도 내가 인지하는 대로 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디에 촛점을 두고 보느냐에 따라서 보는 것이 달라지게 되고, 보이는 것도 있고 절대로 볼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육면체도 뒤에 있는 세면은 볼 수 없는데 사람에게는 얼마나 다양한 면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내가 경험한 그것만으로 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때로는 정죄할 때도 있습니다.  조금 우리의 시선을 다양하게 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판단을 조금 더 신중하게 하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그 인생의 경험을 알고, 그의 성격도 알고, 그가 살아온 과정도 알고 보면 조금은 더 그 사람이 입체적으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내가 경험한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겸허함이 사람과의 관계에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늘 더 알아가고 배워가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추석이 지나고 완연한 가을도 접어들게 됩니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남가주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한 해의 마지막으로 가면서 조금 더 자신을 성찰하고 우리가 맺은 관계들을 성찰하고, 하나님을 더 향유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더 넉넉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영글어 가면 좋겠습니다. 2023년 10월 1일 박일룡 목사       
    202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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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
    향유할 것인가 소유할 것인가
    향유할 것인가 소유할 것인가   어떤 목사님의 글에서 ‘향유하다’는 말을 보았습니다. 그 뜻이 궁금해서 국어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향유는 ‘누리어 가지다’ 또는 ‘영위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이미 가진 것을 누리다’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단어의 뜻을 알고 나니 향유란 말이 더 진하게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좋은 것을 보면 ‘소유’하려고 합니다. 예쁜 꽃을 보아도 꺾어 자기 책상에 꽃아 두고 보고 싶어 합니다. 권력도, 힘도, 지혜도, 사랑도 좋은 것이기에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런 소유욕으로 오히려 가진 것을 즐기며 누리지 못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우리는 자꾸 소유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해 달라고, 저렇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그가 이미 주신 것들을 향유하는 법을 배워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요구하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그가 주신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묵상이라고 할 수도 있고 하나님과의 동행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유하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묵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는 삶, 그 아들을 통해서 내게 주신 사랑을 음미하며 누리는 것도 하나님을 향유하는 한 방법일 것입니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었으니궁핍한 생활일지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안에 있고의롭지 않게 부귀를 누림은나에게는 뜬 구름과 같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라고 합니다. 참 멋진 말과 태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향유하는 자는 그 안에서 자족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소유보다는 더 향유하기를 원하는 삶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경건에 큰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2023년 9월 24일 박일룡 목사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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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
    여호와가 우리의 안전지대입니다
    여호와가 우리의 안전지대입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온통 세상이 기후 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으로 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고 수십만의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는 모로코에서 123년 만의 가장 큰 지진으로 또 다시 2천명이 넘는 사상자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스와 리비야에서는 홍수로 엄청난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주에는 네바다 지역에 여름 폭우가 내려 라스베가스가 홍수 피해를 입고, 네바다 사막에서 행사를 하던 수만명의 사람들이 고립이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중부는 토네이도로, 동남부는 허리케인으로, 서부는 산불과 지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전망 좋은 언덕에 집이 있다면 요즘은 산불 피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곳에 집이 있던지 ‘빅 원’이 오면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이런 재앙은 대비할 시간도 없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큰 돌로 만들고 아름다운 나무로 내부를 장식하고 금으로 덮었다고 합니다.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성막에 비하면 너무나 견고하고 아름다운 성전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찾아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시온성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유대인들은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도 결국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완전히 무너지고 불타고 모든 보화는 약탈을 당했습니다.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성막의 두배 크기로 60규빗*20규빗이었습니다(왕상 6:2). 그런데 계시록에서 보여주는 새예루살렘은 이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입니다. 만이천스타디온*만이천스타디온의 크기입니다. 한 스타디온이 185미터 정도이니 45센티미터 정도 되는 규빗과는 차원이 다른 사이즈입니다. 길이만 엘에이에서 텍사스까지 정도의 거리가 될 것입니다. 성곽의 높이는 144규빗입니다. 난공불락의 성입니다.   회복되는 성전은 지극히 크고 든든할 뿐 아니라 정방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방형은 성전의 지성소의 규격입니다. 그것은 회복되는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의 구분이 없이 모든 성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임재 앞에 거하는 그 나라는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은 안전한 장소가 될 것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우리의 안전지대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에게는 하늘에 있는 더 크고 온전한 성, 무너지지 않을 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우리의 안전지대를 만들려고 발버둥 치기 보다 저 멀리 보이는 하늘의 시온성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여호와를 안전지대로 삼는 자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할 것입니다(시 4:8).   2023년 9월 17일 박일룡 목사  
    202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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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벌거벗은 임금님의 어리석은 신하들이 되지 맙시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어리석은 신하들이 되지 맙시다   남부 유럽에만 서식하는 pine processionary moth라는 종류의 나방이 있다고 합니다. 한국말 번역을 찾아보니 마땅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냥 ‘소나무 행렬 나방’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이 나방은 애벌레로 있다가 고치가 되기 위해서 소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온다고 합니다. 땅에서 고치로 있다가 변태를 하여 나방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Processionary Moth라고 부르는 이유는 고치가 되기 위해서 이동할 때 수백 마리의 애벌레들이 서로 꼬리를 물로 이어져서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 없이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는 관료주의나 그런 공동체의 문화에 젖은 사람들을 processionary puppets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우화에 나오는 신하들처럼 말입니다. 자기들이 어리석다는 것을 드러내기 싫은 마음에 임금이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모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이라고 칭찬을 하여 그 임금이 백성에게 조롱을 당하게 합니다. 임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멋 부리기를 좋아하다가 쉽게 사기꾼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런 어리석은 일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더 잘나 보이기 위해서 돈으로, 좋은 집으로, 명품으로, 자신의 외모로, 과장된 경력으로, 학위로 자신을 치장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신을 자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권력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그런 그들이 최고라고 치하합니다. 속으로는 “싸” 보인다고 여기면서도 말입니다. 어리석은 임금님이고, 그의 신하들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누구나 자신을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 놓고 있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두려워서 잘못된 줄 알면서도 세상의 흐름을 따라 살며 그런 것으로 자신을 치장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참된 지혜는 경기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것,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아는 것,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며 그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진정 지혜를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권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주권자로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자일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임을 용기 있게 말하고(고전 1:23, 24), 예수님의 주권과 통치에 용기 있게 순종하는 자들이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2023년 9월 10일 박일룡 목사  
    20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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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벌써 9월의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남가주는 뜨거운 태양빛으로 이글거리지만 이미 북쪽 끝까지 갔던 태양은 다시 가던 길을 돌이켜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입니다. 가을이면 자주 떠오르는 시가 바로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란 시일 것입니다.   누구나 낙엽 지는 가을이 오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마련입니다. 계절의 순환이 어김없이 돌아오듯 인생의 마지막 순간도 누구나 맞게 됩니다. 그래서 좀 더 사색하게 되고 일상의 일이 아니라 영원에 대한 생각을 품게 되는가 봅니다. 시인은 그 가을의 문턱에서 겸허하게 절대자를 추구하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이 되기를 소망하며 깊이 있는 내면의 성찰을 간구합니다.   아직 날이 덥고 낙엽이 지지 않는 남가주에서는 그런 인생의 사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래도 가던 길을 멈추고, 하던 일을 잠시 중단하고, 우리의 내면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해 질 녘 커피 한 잔, 차 한 잔을 두고 공원이나 바닷가에 앉아서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가을의 기도도 깊어가고 영글어 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2023년 9월 3일 박일룡 목사  
    202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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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
    백세를 살아보지 못해도 주의 인자하심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백세를 살아보지 못해도 주의 인자하심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백 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낸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1920년 생이시니 지금 103세가 되십니다. 아마도 이 책은 젊은 사람보다는 인생을 좀 더 살아본 사람에게 더 큰 공감을 일으키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인생은 살아 보니 알게 되는 것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무엇을 이루었는가 보다는 무엇을 남겼느냐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그는 성공보다 더 귀한 것은 사랑을 남기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는 “인생은 나이의 길이보다 의미와 내용에서 평가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백 년을 살아본 그는 인생의 황금기는 60-75세라고 그의 책에서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백세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입니다. 백세시대라고 해도 그처럼 백세를 사는 기회를 얻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60세를 살아보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게 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80, 90세를 살아도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의미와 내용까지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을 때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살아 내기가 버겁게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벌써 인생의 황혼이 다가옵니다.   시편에는 백 이십 세를 살아본 모세의 노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 이십 세를 살아본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노래합니다(시 90:10). 그렇게 수고와 슬픔뿐이며 신속하게 지나가는 것이 또한 인생일 것입니다.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의미와 내용을 고민하며 살 여유가 없이 수고와 슬픔뿐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기”를 구합니다(14절). 그는 40년 광야의 모든 수고 후에 결국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매일 아침 주의 인자하심을 바라보며 주의 손에 자신을 맡깁니다(14절).   백세를 살던 그렇지 못하던지, 의미와 내용이 있는 삶이던 수고와 슬픔뿐인 삶이던 오늘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이 아침에 여전히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도 주의 인자하심과 불쌍히 여기심을 바라며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2023년 8월 27일 박일룡 목사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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