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1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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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137개의 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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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보다 더 귀한 것을 선택하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돈보다 더 귀한 것을 선택하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안중근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일로 수감되었다가, 1910년 3월 26일 뤼순감옥에서 순국하셨습니다. 그는 사형 집행 전 두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르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그리고 그의 유언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삶도, 돈도 명예도, 고국의 국권을 회복하는 일보다 더 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꺼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돈보다 더 귀한 것을 아는 사람의 삶은 아름답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있으면서도 왕의 위엄을 한껏 드러내며 재판정에 앉아 있는 아그립바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당당했습니다. 부러운데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닙니다.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에게 있는 권세와 영광, 부요함은 아그립바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기 때문입니다(엡 1:17-19). 그래서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내가 이렇게 묶여 있는 것 외에는 당신이 나처럼 되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복음을 위해서 희생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이때까지 가치 있게 여겼던 모든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버린 것이지 아깝지만 희생한 것이 아닙니다(빌 3:7-9).   우리는 주의 일을 할 때 대론 ‘헌신 신드롬’을 가지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 삶을 포기하고 이 정도 헌신하였으니 나를 좀 알아 달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채워지지 않고,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이 없을 때 실망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와 복음을 향한 헌신은 나를 버리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위한 선택이어야 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을 위한 헌신은 더 좋은 것, 더 고상한 것을 발견한 기쁨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여전히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돈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음을 알고, 그것을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의 삶이 아름답고, 당당할 것입니다.   2024년 6월 30일 박일룡 목사
    202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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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8
    내 현재도, 미래도, 나의 영혼도 아버지의 손에 부탁드리며
    내 현재도, 미래도, 나의 영혼도 아버지의 손에 부탁드리며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자주 나오는 주제가 “주의 뜻대로 되기를”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더 머물며 복음을 전해 달라는 에베소 사람들의 요청에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납니다(행 18:21).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결박이 있을 것이라는 선지자의 예언에 올라가지 말라고 하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올라가겠다고 하자 바울의 동역자들과 가이사랴 성도들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고대하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해야 하는 일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고난이 있을 것이 뻔한 대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에 미래를 맡기고 고난의 길을 향하여 나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버림받음을 경험하여 울부짖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부탁드립니다(눅 23:46). 어떤 상황이라도 아버지를 향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게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는 예수님을 하나님은 죽음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권세 중에 더 뛰어난 권세와 이름을 주시고, 모든 원수들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맡기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존귀하게 높이실 것임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바울과 제자들은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삶을 맡길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즘은 자주 아파지는 무릎 통증으로 앞으로 좋아하는 하이킹도 제대로 하지 못할까 걱정이 듭니다. 병원에서 원목으로 일하시는 선배 목사님이 환자 10명 중에 5명이 치매 환자라고 하는 말씀에 치매가 오면 어쩌나 하는 겁도 더럭 납니다. 지금도 금방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요. 자녀들의 결혼도 걱정이 됩니다. 끝까지 신실하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지켜 주신다고 말입니다(마 6:31, 32). 때론 나 자신도 신뢰할 수 없고, 어떤 환경이 닥칠지도 모르지만 변치 않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신다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맡기며 담대하게 앞으로 나간 제자들처럼 그렇게 주님의 뜻에 나의 삶을 맡기는 훈련을 계속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처럼 내 영혼까지도 아버지의 손에 부탁드리며 오늘도 다시 걸어가 보려고 합니다.   2024년 6월 23일 박일룡 목사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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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7
    바울과 함께 하신 주께서 우리 와도 함께 하십니다
    바울과 함께 하신 주께서 우리 와도 함께 하십니다   택견을 수련하는 어떤 사범님의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손으로 공격하는 기술이 많다 보니 손을 단련시키기 위해서 매일 6천 번씩 나무를 치면서 단련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16년 동안이나 단련한 그의 손 등은 보통 사람의 손보다 1.5배나 더 두꺼웠습니다. 손 등으로 대리석도 격파할 정도로 단련이 되었다고 합니다.   손은 단련하면 이렇게 돌처럼 단단해지는데 우리의 마음은 고난을 많이 겪는다고 굳은살이 붙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전의 고통에 대한 학습효과로 더 두려워하게 되어, 때론 이것이 ‘트라우마’로 남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바울의 선교 여정을 따라가며 묵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반대하고, 비난하고, 소동을 일으키고, 때로는 폭력을 가할 때도 있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반대가 있으니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그러나 계속되는 고난을 견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갔을 때 주께서 밤에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바울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9).   바울이 여러 도시를 방문했고,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의 방해와 비난과 박해가 있었지만 왜 고린도에서만 주께서 특별히 나타나 그에게 힘을 주셨을까요? 아마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어떤 이유에서든지 더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수많은 고난을 겪어 왔지만 그래도 고난은 감당하기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에게 하신 이 말씀은 바울에게만 주신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이 사도행전을 읽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특별히 삶의 고난과 두려움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특별히 주의 일을 하려고 하는데 맞닥뜨리게 될 어려움으로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일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고린도에서도 유대인의 소동으로 다시 위기에 처했지만, 바울이 이곳에서는 상하지 않도록 지켜 주셨습니다.   우리도 어려움이 닥칠지 모릅니다. 그때마다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고 앞으로 나가면 좋겠습니다. 바울과 함께 하셨던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도 지켜 주실 것입니다.   2024년 6월 9일 박일룡 목사
    202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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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6
    신뢰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더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뢰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더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몇 년 전 어떤 기관에서 조사한 종교에 대한 설문에서 기독교의 신뢰지수는 19.4%로 나왔다고 합니다. 반면에 44.6%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을 했다고 합니다. 다른 종교와 비교해 보면 기독교는 카톨릭과 불교에 이어 세 번째 자리에 위치했다고 합니다.   내용을 조금 더 상세하게 들여다보니 조금 더 심각한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비종교인들의 평가입니다. 비종교인들 즉 어떤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기독교의 신뢰도는 8.6%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잠재적인 가장 중요한 전도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와 기독교인의 신뢰도는 상당히 낮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를 중에 가장 큰 항목을 차지하는 것은 ‘말과 행동의 다름’이었습니다 (32%). 그리고 그다음으로 높은 것이 ‘비리와 부정’이었습니다 (21.4%). 기독교의 독특성을 주장하는 ‘종교적 배타성’이 문제라고 한 것은 10.6%에 불과하다는 것도 의미 있는 내용입니다. ‘과도한 전도’가 문제라고 한 응답도 10.2%였습니다.   이 설문 조사를 통해서 살펴본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거부하는 것은 복음의 독특성이나 전도보다는 대부분은 그리스도인의 윤리적인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인들이 사람들이 보기에 윤리적으로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못되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거부하는 것은 ‘복음’ 때문에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복음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심각하게 반추해 보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회봉사에 관한 조사를 보니 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서 가장 많은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41.3%, 카톨릭은 32.1%, 그리고 불교는 6.8%라고 합니다. 이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사회적인 기부와 봉사는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신뢰는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런 일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안 된 것일까요 아니면 이런 일을 무시하고 기독교의 비리만을 주로 다루는 반기독교적인 언론의 문제일까요?   우리의 봉사와 섬김의 태도와 자세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에 대한 진정한 배려와 사회의 공공선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는 사회봉사는 아닌지 말입니다.   복음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예수님의 마음을 더 가지는 것이 우선되어야 복음적인 삶도 나타나지 않을까 합니다. 더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삶,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교회와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4년 6월 2일 박일룡 목사
    202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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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5
    우리는 대자연보다 더 영구하신 하나님의 품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대자연보다 더 영구하신 하나님의 품 안에 있습니다   다시 그리고 오랜만에 대자연의 품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저는 도시보다는 자연이 더 편하고 좋은 것 같습니다. 산과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 새롭게 자란 연녹색으로 싱그러운 나뭇잎과 그 사이에 탑처럼 쏟아 있는 진녹색의 침엽수가 아름다운 색의 조합을 이루어 냅니다. 그리고 그 위를 덮고 있는 흰 눈은 봄기운에 힘들어 하지만 아직은 그 자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생을 살면서 사별의 슬픔에 아파하고 질병의 고통에 힘겨워합니다. 치열한 생존 경쟁 가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칩니다. 때로는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분주한 삶을 잠시 뒤로하고 대자연의 광활함과 유구함 앞에서 잠시 잠깐 살다 가는 인생의 일들이 모두 부질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겸허해집니다. 또한 동시에 어떤 알지 못하는 경외감으로 평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대자연의 품에 안긴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말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원주민들은 이 광활한 대자연을 “어머니”(Mother Nature)라고 부르며 경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연이 광활하고 유구하다면 이 자연을 만들고 다스리시고 유지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더 크고, 더 영원하실까요. 그리고 그 광활하시고 유구하신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서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대자연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게 여기지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의 고통에도 마음을 기울이십니다. 그리고 그의 백성을 위해서 이 모든 자연도 사용하시고 계십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말입니다.   그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인자하심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감사함으로 감당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하나님의 상속자임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2024년 5월 26일 박일룡 목사
    202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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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4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호주에서 수년간 임종 직전의 환자들을 보살폈던 호스피스 간호사 브로니 웨어(Ware)는 자신이 돌봤던 환자들과의 경험을 토대로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말기 암 환자들이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를 그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뜻대로 한번 살아 봤었다면일을 좀 적당히 하면서 살 것을내 기분에 좀 솔직하게 살았다면, 화내고 싶을 땐 화도 내고오래된 친구들과 좀 더 가깝게 지낼 걸좀 더 내 행복을 위해 도전해 볼 걸   아쉬움이 없는 인생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감정대로, 자기 하고 싶은 것을 다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다 한다고 행복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일 것입니다. 지난주를 돌아보며 저를 행복하게 한 순간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인도를 떠난 지 10여 년 만에 인도에서 함께 했던 선교사님 내외를 만나 교제할 수 있었던 시간도 행복했고, 오후에는 EC 멤버들을 위해 짜장밥으로 섬겨 주신 권사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돌아보니 기억에 남고 행복했던 시간은 열심히 일한 시간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에도 우리가 다 하지 못한 일들로 인해 아쉬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었던 행복한 추억들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생에 중요한 일들, 다급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조금 더 시간을 내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계획해 보면 좋겠습니다. 작은 일상의 일이라도.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기회가 있을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지나고 나면 “왜 그 때라도 해 보지 않았을까”라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지금 아직 함께 할 수 있을 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2024년 5월 19일 박일룡 목사
    202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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