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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 소식

[] 러시아 연해주 곽동원 선교사 소식과 기도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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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로뎀장로교회 작성일 : 2023-08-30 조회수 : 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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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화훼사역에서의 교훈과 미래 사역에의 적용


들어가는 이야기


필자가 처음으로 고려인이라는 이름을 알게된 것은 2002년 미국의 소속 교회에서 떠나는 연해주 단기선교를 통해서 였다. 

우리는 러시아 영토안에서 일어난 해방전 우리 민족의 역사와,소련과의 냉전시대 철의장막 내부의 역사를 성장 교육과정에서 배워 본적이 없었으므로,그들의 존재는 신비로웠고 그들이 처한 상황의 곤경이,절실한 아픔과 충격으로 닥아 왔다.

그들은 이미 160여년 전 기근을 피해 넓은땅 연해주로 이주한 농민들과,독립운동을 위해 일본과 투쟁하기 위해 모여든 까레이스키라는 이름으로 그 땅을 살아가던 우리 한민족이었다.

또한 그들이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분리정책으로 가축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 벌판에 버려진 사실과,20만명이 소개되는 그 과정에서 수만명이 얼어 죽고 그해 겨울을 살아 남은 이들이 중앙아시아의 여러 소련 연방국으로 흩어져 살게 된것도 알게 되었다.

더욱 안타까운것은 50년 가까이 그 땅에서 다시 일군 삶의 터전이,1991년 소련연방의 페레스트로이카(재건과 구조조정)와 글라스노스트(개방과 언론의 자유)로 인한 붕궤로 중앙아시아

연방국들의 독립으로 인한 민족주의 부활로 그땅을 살아가기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들은 또다시 옛날 조상들이 살던 연해주로 역이주 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터전에서 정착을 위해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해 단기선교를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7년의 선교지탐색과,6개월의 훈련과 14년의 사역을 통해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그동안의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지난날을 정리하며 미래를 기획하는 기회로 삼고자 하여 이글을 쓰게 되었다.( 1 )


A: 나의 신앙 입문

필자 부부의 러시아선교를 설명 하려면 나의 신앙 근원에 대해 설명이 필요 할듯 하다.

필자는 20대 후반에 3대째 모태신앙인 아내와 결혼함으로 신앙에 대한 아무 근거없이 교회문화 안으로 들어 오게 된 혼후 신앙이다.

세상적인 안목으로 소비적인 삶을 살며 청년기를 무의미하게 낭비한 경험의 깨달음으로,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각성의 시기에 미국 교포인 아내를 만났고,그녀의 권유로 신앙에 관심을 가진채 결혼을 하고 이민을 떠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나온 젊은날의 무절제했던 삶을 회개하며 교회생활을 시작했다.

기존의 삶의 영역에 남아 있던 변화되지 않은 성격이나 습관들이,경험 되지 않은 신앙생활의

영역에서 잦은 충돌을 겪었지만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그런대로 교회라는 집단의 합의된 문화안에 적응할 수 있었다.

타국에서 새로운 환경속을 살아가며 겪는 세상과의 투쟁은 각오한 이상으로 험난 하였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필자에게 주신 마지막 달란트라고 여겨지는 원예에 대한 취미가 생업이 되어,처가에서 운영하는 화원농장에 조경사업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후 큰 변화없이 흘러가는 세월따라 삶의 형편은 안정되어 갔고,두 자녀들이 신실하게 자라주었으나,필자 개인 신앙적으로는 타성에 젖어 권태기에 빠지게 될 즈음,2002년 여름 교회에서 떠나는  러시아 연해주 여름 단기선교팀을 따라 나서게 되었다.


B: 선교지로 연해주를 선택하게 된 이유

중앙아시아에서 연해주로 역이주한 고려인들의 험난한 삶을 목도하고,같은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던 한인 디아스포라로써 , 안정된 미국에서 교회생활을 하며 누려 온 영육간의 풍요에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 온 나의 삶을 회개하게 되었고,신앙적 현실적인 그들의 필요를 돕는 선교적 삶으로의 헌신을 생각하게 되었다.

필자의 생업이었던 원예의 선진성으로 고려인 농가에 도움을 줄수 있는 동기가 될수 있고,교회안으로 모이는 청소년들을 나의 다양한 청소년기의 경험으로 돌 볼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 선교의 시작은 신앙적 동기가 아니라 동정에서 기인한 감정적 동기 였다.


   1: 고려인 농가의 노동능력의 확인과 화훼사역 가능성 시장조사

      a:고려인 농가 노동 능력의 확인

         연해주로 역이주한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은 중앙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집단농장 “콜호츠            

         “ 형태의 농사 방법이 아닌, 변형된 자본주의 영농 방식인 “고본질”이라는 혈연 집단 농

         사 방식으로 그 사회에서 많은 노동영웅을 배출하며 영농을 주도 하였다. 그 자녀들은 

         나중에 어떤 직업에 종사함에 관계없이 부모세대들의 농사를 도우며 자라 왔으므로 모두

         가 농사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일부 조기 귀환한 고려인들은 열악하지만 비닐하우스를 

         짓고 조기 야채모종 재배와 노지작물 재배를 시작하고 있었다.(1)

      

      b:러시아 꽃시장 현황 파악

         러시아 민족은 알려진대로 대단한 문화적 자부심과 능력및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꽃에 관한 사랑은  특별하여서 “러시아인은 빵 없이는 살 수 있으나 꽃없이는 살 수

         없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리에는 편의점보다 꽃가게가 많으며,일상생활에서 꽃의

         수요가 높다.(2)

         특히 여성의 날이나 발렌타인데이와 전승 기념일,입학과 졸업 시즌에는 절화 꽃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블라디보스톡 인근 소도시마다 5월1일부터 7월말까지 1년생 꽃모종이나,과수 묘목과

         극소수 재배된 조경수들을 판매하는 꽃 전문 시장이 열린다.

         주목할 것은 연해주를 포함한 시베리아 지역은 겨울이 6개월에 달하므로,비닐하우스를 

         통한 속성재배로 화단용 꽃모종을 키워 봄시장에 출하 하면 소득 증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3)

  

  

    2:고려인 청년 교회(우스리스크 소망교회)지원계획

        2002년 단기선교로 시작된 7년간 봄,가을 방문으로 교회와 청년들과 교감을 나누며

        한국과 미국 이민교회 청년들과 영적 교류의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청년들의 미국 유학과 찬양팀 상호 방문,장학금 유치및 일반 평신도 단기선교를 계획하게

        되었다.


C: 선교사 헌신을 위한 훈련과 1기 사역 계획

    

    1:선교훈련

       한국으로 입국하여 2008년 6월부터 12월까지 선교 훈련 단체인 

       GMTC(Global Missionary Training Center)에서 선교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도모하

       며 타문화권에 뿌리를 내리고 사역에 임할 수 있는 능력과,전인적 성숙및 건강한 선교사

       신앙인격과 실제적 사역기술을 쌓는 훈련을 아내와 함께 수료 하였다.

       2009년 1월 GMP America 허입되고 4월 남가주사랑의교회에서 파송 받았다.


   2: 1기 사역계획

     a: 영농사역

       중앙아시아에서 역이민한 고려인 영농교육및 지원

       비닐하우스(한국자재) 설치와 영농을 위한 소자본 단기 대출

       한국 농촌진흥청 전문인 초청 고소득 작물 재배 지도

       지원농가 심정 설치

       러시아 화훼시장 조사와 종묘구입.

     

    b: 교회사역

      지원농가들 교회 인도

      우스리스크 소망교회 청년 대학생 장학금 후원

      고려인 대학생 미국 유학 선발

      교회 독거 노인 지원

      파송및 후원교회와 단기선교 상호 교류

      우스리스크 소망교회 찬양팀 해외공연 추진


D: 1기 사역 좌절을 통해 파악한 기초 농업 현지 문제점과  교회사역의 가능성

    

1기사역의 시작은 어느 대형교회의 거창하게 설계된 project의 영농 부문에 합류하는 일이었는데 미국에서 원예와 조경부문에 오랫동안 종사했던 경력을 전문가로 인정 받으므로 가능한 것이었다.그러나 선교지에서 하나님 나라 사역에 대한 꿈이 무너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 선교사의 능력과 현장의 농업여건의 거리감

    우리가 선교 Tool로 사용하려던 선진 화훼기술과 수십년 격차가 있는 낙후된 현지 기초 농

    업 수준의 격차를 실감하고,그들의 방법으로 진행되는 영농 수준을 몸으로 터득하여 새로운

    접촉점을 찿아야 했다.

  2:장기 체류 조건 비자 확보의 어려움

    현지 언어연수를 위한 학생비자가 신청자의 연령 초과로 불가능 해졌고,비자를 담당하는 

    행정당국의 후진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체류비자 유지를 위해 사역지를 두달에 한번씩

    떠나야 했다.

  3:동역 현지 사역단체의 사역철학의 부재와 선교사들의 사명감의 결여

    선교사로 떠나기 전까지 알고 있던 함께 동역 할 하나님의 선교를 앞세운 대형 선교공동체

    는 그 프로젝트를 설계한 대형교회 지도자의 측근들로 구성된,선교전략이 통일되지 않은

    동상이몽의 공동체였다. 특히 실망한것은 건전한 건의나 비판은 토의되거나 수정 되지 않았

    으며, 타문화권 선교에 대한 전략적 고심없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대형교회의 주재원처럼 살 

    아 가고 있는 생존형 선교사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미흡하나마 선교훈련을 통해 배우고 수립한 타문화권 선교전략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방문때마다 그의 안목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하느라 수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계획

    을 수정을 겪어야 했다. 처음 몇년은 선임 영농 선교사를 따라 다니며 그의 젊음의 순수한 열

    정과 고려인 사회를 향한 선교전략적 접근성과 수용성을 좋게 평가하고 동역을 원했으나,그

    가 가진 사회적 폐쇠성과 고려인 사회와의 목표 공유에 실패 함으로써 영농센터 전체의 위

    기를 초래함을 경험하며 좌절 되었다.

 4:선교사(필자) 자신 인격의 한계점과 관계성의 부족함을 깨달음

    그러나 1기 사역 4년 동역관계의 혼돈 속에서 동역자들과 하나 되지 못하므로 내 자신의 

    인격과 인내심의 한계를 확인 함으로써 앞으로의 계획을 수정 할 수 있었으며,아울러 

    고려인 농가와 영농재배 현장을 지속적으로 방문함으로 그들의 필요를 파악하고 재래식

    영농방법을 습득할 수 있었다.

 5: 교회 사역은 선교사 파송 전 7년동안 고려인 청년교회와의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의 지속으

    로 장학사역과 경노사역,교회 조경사역에 관여 하는 등 사역의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E: 1차 안식년(2014년 1년)과 새로운 사역계획

    

  1:들꽃향 센터 설립과 새로운 사역계획

    a:선교관및 영농센터로 “들꽃향” 센터 농장부지 매입후 자체 영농선교로 전환.

    b:파송및 후원교회및 개인 후원모임과 기도모임 시작.

    c:자체 비닐하우스설치로 다목적 작물 재배(다육식물,러시아 자생 다년생 조경용 수목 

       묘목재배,고소득 작물 시범재배)

    d:발아율이 높고,병충해에 강한 종묘 수입 루트 확보.

    e:블라디보스톡 한국 총영사관과 한국 외교부 지원으로 고려인 영농사업 지원 확대

    f: 디지탈 양봉 농업법인 BEE ON FARM 과 공동 양봉사업

       

  2:교회사역. 

     1기 사역과 동일


F:2기 사역의 시작

 

  1: 선교 영농센터  “들꽃향”사역

    2기사역은 1기사역 4년을 통해 경험한 다양한 문화충격과 관계 속에서 드러난 개인적

   인격의 자기 각성의 고뇌와, 바닥으로 낮아진 자존감에서 비롯된 개인 기도와,우리 부부

   선교를 위해 기도 해왔던 많은 기도 후원자들의 기도와,한국 정부의 고려인 지원사업을

   연계해 준 블라디보스톡 총영사관의 도움으로 2005년 우스리스크 인근 “아씨노브카”

   라는 시골마을에 3,000평 규모의 대지를 구입하게 되었다.

   차고와 축사와 선교관을 건축하고,30M*7M 비닐하우스 5동을 짓고,대형교회와의 동역사

   역을 접고 준비된 계획을 따라 독자적인 사역으로 전환 하였다.

   한국정부와 후방 기도 후원자들의 지속적인 도움과,고려인 지원농가의 근면함과 필자

   부부의 꽃과 영혼에 대한 진정성에 하나님의 돌보심이 더해져서 교회와 영농사역이 번창

   하기 시작했다. 이시기에 하나님께서 우리 사역에 천군만마와 같은 우즈벡키스탄 노동자

   부부가 동역자로 합류하게 되어 내외적으로 안정된 사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비자 문제는 안정적 체류가 가능한 비자가 확보 되었고,언어 문제는 사역 대상자 대부분이

   고려인으로 기본적인 소통이 가능해졌으며,대부분 꽃과 관련된 용어들은 그리스학명으로

   (Botanical name)으로 통용되고 있어서 대화 소통에 어려움이 없었다.

   품질 좋은 종묘를 미국과 한국에서 구입 보급하고,수익증대로 부가가치가 높은 일본 토마토

   와 여름 딸기 모종을 한국과 중국에서 확보 공급하였다.

   2015년 고려인 한가정으로 시작한 1년생 화초모종(annual flower)재배는 꽃의 품질과 다

   양한 품종에 매료된 구매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에 힘입어 2022년 현재 50여 가정의 재배자

   들이 블라디보스톡 인근 8곳 꽃시장의 70%이상 상권을 확보하고 있다.

   

   a: 들꽃향 선교사역의 목표

   들꽃향 사역은 외형상 전문인 선교,또는 BAM, 즉 business as mission 이라 이야기 하는 

   분들이 있다.이 시점에서 확실히 하고 싶은것은 크리스챤으로서 고도의 전문성 또는 기술을        

   소유한것이 전문인선교사가 되기 위한 필요 충분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한다.선교지 현장

   선교사에게는 직업적 전문성보다 현장의 현실적 사역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

   또한 사역을 통해 창출된 이익으로 선교함이 아니라,그들의 생업의 현장으로 들어가 함께

   얻은 경험의 공감치를 들고 세상 경제에 적용하며,그 과정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그들이 인식하는 때에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다.

   같은 말 같지만 내가 재배자들을 인도함이 아니라 최고의 방법은 아니더라도 그들과 함께 주    

   어진 상황 가운데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여 끊임없이 보완을 이루워 가며 청년교회와 그 열매 

   를 공유해 가는 신앙적 협력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들꽃향 원예사역은 선교사가 수익을 창출하여 선교대상자들을 고용하는 사업장이   

   아니다. 센터를 중심으로 사방 4시간 거리에 흩어져 있는 꽃농가 재배장과 판매장을 수시로

   점검하여 컨설팅해주고, 쎈터에서는 앞으로 10년을 계획하는 사업으로 조경수로 재배 가능

   한 수목을 자연에서 채취하여 시범재배하여 시장성을 확인후에 농가에 무상으로 샘플을 

   공급하는 시범재배장이다.

   센터 주변을 시범 조경지로 조성하여 앞으로 경제적 풍요기가 오면, 조경업에 관심있는 교회

   청년들을 양성하며, 생산되는 농산물의 수익으로 건물유지에 사용하고,잉여 농산물은 교회

   공동체와 통용하고 있다.

   

   b: 들꽃향 자산의 현지화

   선교지에서 느낀 또하나의 문제점은 선교를 통해 형성된 자산이 대형 교회 지도자의 권위를

   유지하는 자본으로 구축되거나,담당 선교사의 사유화가 되는것의 부당함이다.(   )

   1기 사역에서 실속없이시각적인 외형만 불려가거나,명분없는 property 증식에 열심인 사람

   들을 많이 보아 왔다.

   필자는 선교관 부지 구입 시작부터 앞으로 형성되는 모든 선교지 자산은 현지에 이양하고 

   떠난다는 목표를 세웠다.자금 소비의 책임이 없는 한도내의 정부 지원과,후방에서의 기도와

   물질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건물과 토지와 부속시설 모두 교회 청년지도자들 명의로 이전 하

   였고,최근에 구입된 토지도 사역계획에 따라 개발,이양 될것이다.

   

   c: 새로운 사역의 시도

   원주를 기반으로 하는 “횡성 새말양봉”과 익산의 디지털 양봉업체 농업법인

   “BEE ON  FARM”과 협력하여 시범 양봉을 통해 고려인 양봉인을 양성하며,생산물은 전량

   한국으로 수출하기로 하였다.

   2018년부터 시도한 다육식물 재배는 잎꽂이로 시작하여 비닐하우스 2동에서 재배중인데,

   2020년부터 우스리스크 최대 꽃 백화점에 “za gorade”에 납품을 시작으로,고려인 꽃재배  

   농가 12가정에 묘목을 무상분배하여 재배 되고 있다.

   농어촌 개발공사 추천으로 충남 태안의 백합,튤립 구근회사의 시장조사에 협력하여,

   모스크바나 칼루,크라스노다르에 진출한 미국과 네델란드와 경쟁할 지역인 블라디보스톡

   지역 탐사에 참여 하였고,그 노력으로 많은 양의 구근을 양도받아 농가에 무상증여 하였다. 

   2020년 하반기에 센터 옆 토지 3.000평을 ,청년 야외 결혼식장과 청소년 수련장으로 조성

   하기위해 매입하였다.

   

   d: 교회사역

   2005년 이후 매년 단기선교팀 250-280명 교회와 농가 방문

   우스리스크 소망교회 찬양팀 매 2년마다 3회 미국 방문 순회공연.

   우스리스크 소망교회 대학부 매년 6명 장학금 수여

   블라디보스톡 청년 5명 미국 유학 후원

   우스리스크 소망교회 냉난방 시설및 음향기기 설치


G:  2기사역( 2005-2021) 말미에 닥친 위기

재가동된 들꽃향사역은 4년의 현지 상황화의 적응과 탐색 기간을 거친 1기사역의 경험을 바 

탕으로 화훼사역과 교회사역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힘입어 2020년까지 순조

롭게 진행 되었다.

교회는 한국 목회선교사의 개입이 없는 고려인 청년 교회로 안정적인 성장을 해 갔으며,장학생

청년들은 한국으로 진출하거나 고향에 남아 교회와 어른들을 섬기며 교회를 이끌었고,계획대로 찬양팀은 2년에 한번씩 미국을 방문하여,그동안의 섬김을 받던 신분이 아닌 섬기는자의 자격으로 세차례 순회공연을 하였다.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 의사와,신학생 2명,고등학생 1명의

미국 유학을 주선 하였으며,한국과 미국의 후원교회 청년부 단기선교팀의 연해주 방문을 통해

세나라 디아스포라 청년들의 신앙 교류를 주도하였다.

중국의 선교사 추방 정책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연해주로 입국하였고,연해주를 거점으로 새로운 사역을 모색하던중 들꽃향센터를 전문인선교 성공사례로 벤치마킹 하겠다고 찿아 왔다.

우리 부부 선교사역이 안정되고 뜨거웠던 열정을 숨 고르기 하며 조금씩 긴장이 풀려 갈때

서서히 재앙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1: 갑자기 일어나는 재앙

    a: 1호 화훼 지원 가정 고려인 가장의 탈선

      2020년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펜데믹으로 서서히 온 세상이 불안의 늪으로 빠져 들

      때 쯤,첫번째 꽃재배 지원 농가로 자립에 성공한 고려인 최빅터 부부가 교회에 출석 했다.

      그러나 곧 남편의 불륜으로 가정이 파탄나고,그해 여름 남편이 뇌경색으로 쓰러지더니

      두달후에 코로나 확진으로 세상을 떠났다.

    b:미국 유학생의 약물중독

      미국 유학을 떠난 아들 신변의 이상을 감지한 어머니의 제보를 듣고,급히 미국으로 돌아가

      어렵게 청년을 찿아내어 연해주로 돌아오던 날,코로나 확산으로 모든 연해주 국제 항공편

      이 동결 되었다.

    c:동거 동역자의 구속

      거의 일년간 농장에 머물며 새로 구입한 토지 정지작업과 농장 시범재배,교회사역에 하던

      2020년 11월 아내가 서류문제로 미국으로 떠난 며칠후,그동안 우리를 도와 친자식처럼  

      함께 살아온 센터 거주 동역자 부부가 정보기관에 연행되어 갔다.

    d:기록적 대설과 한파로 시설물 붕궤

       2020년 12월부터 3개월간 이어진 38년만의 한파와 폭설로 비닐하우스 2동이 붕궤 되

      었고 정전과 자연재해로 인한 시설물 관리에 위기가 닥쳐 왔다.

    e:공황장애와 폐쇠공포로 개인적인 건강 장애

      코로나 확산을 통한 신체적 고립과 대표 후원 농가의 몰락,유학생들의 현지 적응 실패와 

      동역자의 구속과 자연재해등 연이은 고난으로,그동안의 활기 찬 사역의 주체가 내가 아니

      였음을 깨닫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나를 위해 기도와 물질로 돕는 후원자들과 정당한  

      보수를 받고 일하는 고용 노동자들과 내가 돕고 있다는 현장 꽃재배자들 조차도 내사역을

      위한 존재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나에게 허락하신 동역자라는 깨달음 이었다. 

      내가 선교의 주체가 아니였고 내힘과 능력의 결과가 아니였다는 자각이었다.

      매일 혼자 겪는 농장 관리가 힘에 부쳤고,밀려오는 두려움에 폐쇄공포와 공황장애 우울증

      까지 겹쳐왔다. 견디다 못해 모든 사역을 목사와 교회 청년들에게 맡기고,파송교회와 파송

      단체의 허락을 받고 2021년 초 봄에 코로나 접종을 핑계로 미국으로 귀국을 하였다.

    f: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시작으로 2차 안식년

      3개월의 안식월 기간에 종합검진 후에 앞으로의 사역계획을 검토한 후에 다시 연해주로

      돌아와 겨우내 헝클어진 농장을 정비하고 2022년 1월 종묘구입차 미국으로 재 입국 

      했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시작으로 인한 미국인 러시아 입국 제재와 항공편 동결로 

      발이 묶여 2차 안식년을 갖게 되었다.


H: 2차 안식년과 앞으로의 계획


   1:2기 후반부 사역 고전 이유 분석

     a: 사역의 모본과 관찰과 시도에서는 안정적이였으나 동역자 개발에 소홀하였고,현지인

        들이 선교사의 일방적 지원에 의존하여 자존 능력이 부족했다.

     b:영농분야에서 개인적으로는 지속적인 비판적 현실적 상황화에는 접근 하였으나 성경적   

       가치관 부여에 취약하였다.

     c:교회내 청년 사역에 있어 말씀으로 문화적 변혁에 대응하는 영적능력 함양에 부족했다.

     d:사회주의 개념 사회에서 현지인들의 새로운 경제관념에 따른 감정의 변화를 읽지 못했고 

        선교사의 외형주의,물질주의,실적주의,권위주의의 주도가 무의식중에 도입 되었다.

     e: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얻은 1기사역의 귀중한 깨달음을 잊고,외형적 가시적 급성장에 자

        기 도취되어 영적 육체적 헤아림 없이 사역에 몰두 하였다.

     f:동거하는 고용 동역자들과 사역 현지 수혜자들 역할의 성과를, 나의 능력치에 합산하여

       형성된 필자 능력의 과대평가를 간과 하였다.

     g:선교는 선교사가 주도하는 사역이 아닌,후방의 교회와 기도와 물질 후원자를 포함하여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선교임을 망각 하였다.

     h:하나님이 필자에게 허락하신 능력과 지혜를 구하고 헤아리는데 둔감하였고,사역의 유효

        기간에 유의하지 못했으며,나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사역 마무리를 준비하지 않았다.

      I:위기와 고난에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 했으며,비겁하고 두려워 했다.

      “지식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잠언 19장 2절.”

       

  

   2: GMTC 경력선교사 재훈련 참여

    러시아 재입국이 불가능 해 짐으로써 급하게 러시아 선교 20년을 재점검 하게 되었고, 

    2020-2021년의 다양한 고난을 통해 헝클어진 연해주 사역을 새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GMTC에서 개강하는 경력선교사 재훈련을 받으며 새로이 선교에 대한 철학을 재고하고,

    재난과 위기에 대한 대응방안과 전략적 조치와 슬기로운 사역 이양을 준비 하기로 하였다.

    (GMTC 65기 2022.8-12 경력 선교사 훈련 졸업)


   3: 러시아 재입국을 위한 한국 국적회복 신청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막힌 러시아 재입국을 위해 입국이 허용되는 한국 여권

     취득을 목적으로 GMTC 훈련기간 동안에 국적회복 신청을 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4:사역 이양과 후속 지원사역및 새로운 시도

     a:들꽃향센터 사역의 분할과 자산의 이양

        교회및 청년사역: 기존 선교관과 숙소는 이미 교회 청년들 명의로 이전 되었으므로 청년   

        들 사역과 범교회적인 수양관으로 사용 될 계획임.

        영농및 화훼사역: 대지와 비닐하우스 시범재배 단지는 기존 후원 농가 청년 동역자 중에                   

        서 신앙과 토착적 지도력 개발 능력이 검증되고,화훼에 대한 열정이 능력보다 잠재력이   

        고려된 인물을 발굴하여,후방에서 기술지도와 몇년간의 검증을 거쳐 이양할 계획임.


     b:우크라이나 영농센터 신설과 우크라이나 전쟁 복구사업 연합 포럼 참여

        우크라이나 헝가리 국경지역 난민촌 고려인 영농센터 설립 기술 지원(2023년 4월)

        우크라이나 지원 공동대책위원회와 대한민국 디지털 양봉 “bee on farm”과 협력하여

        영농센터에 양봉 시범농장 개설


     c: 들꽃향 센터 이양 후 현지인 자립을위한 후원 모임 “미주 들꽃향” 사역 시작.

       14년 동안 필자의 사역을 중단없이 후원해 온 동역자와 교회들과 연합하여,현지 사역이

        성경적,문화적,경제적 호환성을 겸비한 자립 공동체로 자라 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


     d:대한민국 안산 고려인 러시아 교회 협력

        필자의 20년 사역동안 교회와 영농사역을 통해 인연을 맺은 많은 청년들과 영농 고려인 

        들이 취업을 위해 한국으로 들어와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민족 디아스포라 후예들

        로써 세계를 떠 돌다가 다시 조상들의 땅으로 회귀하여 이방인의 삶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들이 안산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것을 알고 교회를 찿아 갔다가 마치 20여년

        전 처음 연해주 단기선교때 받았던것과 같은 충격을 받게 되었다.

        필자가 마음에 품었던 많은 영혼들이 그 곳에서 뜨거운 열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었으며,최근에는 징병을 피해 러시아를 떠난 우리 교회 청년들도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러시아 선교사역의 결과물(?)들이 하나 둘 무너져 내리는듯 한 심리적인 자궤감

        이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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