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향기
[] [홍종필 집사] 성장반을 수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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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기본 진리 (성장반 2) 교육과정 후기
2023년 상반기 기독교의 기본 진리 교육과정에서는 ‘구원,’ ‘성화,’ ‘선과 악,’ ‘교회,’ 그리고 ‘죽음과 그 이후’ 주제에 대해 8주간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완희 목사님의 인도 하에 여덟 명의 참석자들과 함께 기독교의 기본적 교리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양한 주제에 관해 개괄적인 공부를 했지만, 아무래도 기독교의 진리 중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구원일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수없이 반복하여 말하고 있으며, 이 말은 성경 전체의 핵심적 내용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구원은 믿음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지, 행위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8-9; 로마서 1:17; 갈라디아서 3:11; 로마서 3:28; 빌립보서 3:9; 갈라디아서 2:16; 디도서 3:5).
하지만 동시에 성경은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을 얻기 위한 행함의 중요성도 아울러 여러 곳에서 언급함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2:17, 26; 마태복음 7:21). 그럼 과연 은혜와 믿음과 행함은 서로 어떤 관계이며, 궁극적으로 이들이 구원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레 생겨났습니다. 그동안 알고 있다고 생각은 했으나, 막상 공부하면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찾고자 하니 딱히 마땅한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 말씀이 구원과 관련하여 믿음과 행위에 대해 상반되며 혼동을 주는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공부했던 내용을 다시 보며 추가적으로 성경을 찾아보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과 행함을 언급했던 성경 구절의 맥락과 그 목적을 생각해보니, 나름대로 믿음과 행함이 어떻게 구원과 연결되는가에 대한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즉, 구원을 얻기 위한 믿음과 행함은 서로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기 위해서 믿음은 필수 조건이고 구원받은 결과로서 행함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라는 발견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 (에베소서 2:10) 라는 말씀같이 우리의 선한 행실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구원의 결과로서 선한 행실은 반드시 뒤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구원의 나무라면, 행함은 그 나무에 열리는 구원의 열매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아울러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기게끔 만들고, 행함은 사람을 사람 앞에서 의롭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사람을 의롭게 하고, 행함은 다시 그 믿음을 의롭게 한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행함은 그 구원받은 믿음이 진짜인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 구원에 있어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표현해 보자면, 이 두 가지 요소는 수학적으로 합 (+)의 관계가 아니라 곱 (x)의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믿음을 100점, 또 완벽한 행함을 100점이라 했을 때, 합의 법칙에 따른 구원에 이르는 완벽한 믿음과 행함의 합산 점수는 200점일 것입니다 (믿음 100점 + 행함 100점). 이 둘 중 어느 한가지가 완전히 결여되었다 하더라도 구원은 절반 정도 (200점 만점에 100점) 성취된다고 설명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믿음 100점 + 행함 0점 = 100점, 또는 믿음 0점 + 행함 100점 = 100점). 하지만 믿음과 행함을 곱의 관계에서 본다면, 둘 중 어느 하나가 완벽하더라도 다른 하나가 결여된 경우 구원은 결코 얻어지지 않는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믿음 100점 x 행함 0점 = 0점, 또는 믿음 0점 x 행함 100점 = 0점). 결국 구원의 원인과 결과인 믿음과 행함은 서로 분리되거나 별개의 것이 아니라, 늘 함께 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7:24-27 에는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우리는 보통 주의 말씀을 듣고 실천한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요, 주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 비유가 행함의 유무를 대조한 비유라면 정작 집 짓는 행위를 비교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비유는 주님의 말씀을 기초로 하여 집을 지은 사람과 주님의 말씀 외의 것에 기초하여 집을 지은 사람을 비교한 것입니다. 지어진 집에 대한 비교가 아니라, 그 집이 무엇에 기초하고 있느냐를 비교한 비유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음과 없음을 판단한 것입니다. 집이 견고한 것도, 또 무너지는 것도 다 기초 때문이고, 믿음이라는 견고한 기초를 가진 그리스도인은 자연스러운 행함과 순종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얼마나 종교적인 행위를 했느냐 보다 지금 하고 있는 그 어떤 일로도 그리스도의 성품을 얼마나 잘 나타내는가로 자신의 믿음을 판단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믿음은 구원의 나무이고, 행함은 그 나무에 열리는 구원의 열매입니다. 이런 열매를 맺는 믿음만이 나중에 주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게 되리라 믿습니다.
바울 서신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씀이 여러차례 나옵니다. 선한 행실은 내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기초하여 성령의 법으로 살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기에, 성령을 소멸하지 않고 성령의 이끌림에 따라 믿음을 갖고 사는 매일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태복음 7: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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